음악이 시작되자 푸른 잔디 위에 춤사위가 펼쳐진다. 각 춤사위에 하나씩 춤꾼의 표정이 얹혀 하나로 이어지고, 각각의 춤사위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뚜렷한 형식도 없고, 정해진 모양새도 없다.
한참을 보아도 무슨 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춤꾼으로부터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형식이나 틀에 구에 받지 않고 음악에 흐름에 따라 내적인 감성을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으로 추는 춤이 감성무(感性舞)이다. 말 그대로 느낌으로 추는 춤이다.
춤을 추는 춤꾼이 바로 감성무를 만든 국근섭 명인이다. 감성무의 창시자 말고도 수식어가 많다. 판소리 소리꾼, 사투리 음반을 낸 앨범 가수, 영화 및 연극배우, 다도 사범, 한옥펜션 대표 등등. 어느 한 가지를 뽑기가 어렵다. 명인 스스로도 자신을 ‘멀티(multi) 종합예술인’이라고 말한다.
국근섭 명인은 학창시절에는 그 흔한 디스코텍 한 번 안 가본 나름 ‘범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은 조그마한 음악회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노래를 듣는데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이다. 내면에서 절로 솟구친 감정의 표현을 경험한 그는 곧장 춤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5·18 직후 군대에 갔다. 군 생활 내내 전라도 출신이란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맞아가며 갖은 고생을 했다. 전역 후 멍들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것이 소리였다. 소리는 자연스럽게 춤으로 이어졌다. 감성무의 시작이다. 그렇게 명인은 감성무의 세계로 온몸을 던졌다.
감성무(感性舞)는 느낌으로 추는 춤이다. 고정된 춤사위가 없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춘다. 춤의 주제와 내용이 같아도 춤을 추는 상황, 출 때의 감정,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매번 춤이 달라진다. 같은 무대에서 같은 음악으로 춤을 추더라도 똑같은 춤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 300여회 이상 공연을 하며 국내·외에서 인정하는 명인이지만, 한때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있었다. 감성무를 추던 초기, 공연을 끝내고 모인 뒤풀이 자리에서 당시 무용계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로부터 그것도 춤이냐는 핀잔을 들은 것이다. 나름 큰 충격을 받고서, 춤이란 무엇이고 왜 춤을 추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여러 날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춤은 마음이 추는 것이고, 그 누구보다도 진솔하게 춤을 추기 때문에 춤을 추면 행복하다’라는 것이었다.
국근섭 명인은 춤을 추며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2017년 진도 팽목항에서 열린 팽목항 예술제에서였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수습자의 빠른 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춤을 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 모인 수백명의 사람들의 감정이 국근섭 명인에게 흘러들어 왔다. 온몸으로 춤을 추며 그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했다. 국근섭 명인은 그때의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담양은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다. 국근섭 명인은 고향인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춤을 추고, 소리를 하고, 직접 차를 만들고 마신다. 또 한옥펜션을 운영하며 판소리와 전통차 체험을 통한 남도의 멋과 풍류를 전한다.
인간의 감정의 동물이다. 동양에서는 흔히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심(慾) 등 칠정(七情)으로 말한다. 예부터 춤(舞)과 노래(歌)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감성무는 결국 춤의 본질을 따르는 예술이다. 인간의 감정을 자유롭게 몸 가는대로 표현하는 춤, 국근섭 명인의 바람대로 감성무가 널리 퍼져 세상을 치유하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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