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순자(荀子, 기원전 315년-236년)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유학자이다. 맹자가 성선설(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선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악하게 된다고 하는 학설)에 입각하여 덕치주의(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의)를 주장했다면, 그는 성악설(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후천적 교육을 통하여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는 학설)에 근거하여 예치주의(예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주의)를 주장하였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고향동네의 서당에서 공부하였는데, 열다섯 살쯤에는 그의 재능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는 제나라의 서울 직하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그 곳은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유가를 비롯하여 여러 방면의 학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학문의 대향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던 제나라에 대해 시기와 질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주변의 나라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직하의 학자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순자 역시 이때 초나라로 건너갔는데, 제나라가 다시 문화진흥책을 쓸 무렵 직하로 돌아왔다. 순자는 원로 스승으로서 높은 대우를 받았으며, 또 제주(祭主-원래는 제사를 주도적으로 지내는 사람을 가리킴. 여기에서는 고위직의 벼슬을 지칭)라고 하는 벼슬을 십년 동안 세 번씩이나 지냈다고 한다.
그의 일생은 비교적 단순하고 질박하였고, 공자나 맹자처럼 많은 지방을 돌아다닌 적도 없으며, 우여곡절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생의 전반기는 거의 서재에서 책을 보며 지냈고, 제나라에 간 쉰 살 무렵부터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나라에서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간 다음, 당시 법가사상에 입각하여 군대를 정비하던 진나라의 정치가 범수에게 그의 철학을 설파하였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어떻든 이때는 춘신군(재상으로서 20년 동안 권세를 휘두름)이 초나라의 재상이었고 순자 또한 이 춘신군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는 난릉 지방의 현령(縣令:비교적 큰 현을 맡은 지방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춘신군 앞에서 순자를 모함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순자는 당장 그 직책을 버리고 조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춘신군은 다시 그를 모시고자 하였다. 이에 순자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내 초청을 거절하였던 바, 그 내용은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춘신군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이었다.
“저 보배로운 주옥이여, 아름답기도 하여라! 아! 그러나 목에 걸 줄을 모르는 도다. 곁에 있는 천하일색의 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엉뚱한 추녀 요부의 치마 밑을 후비는 도다. 앞 못 보는 눈은 마땅히 밝혀줘야 하고, 어두운 귀는 항상 뚫어줘야 하고, 위태로움은 안정을 찾게 해줘야 하고, 흉한 것은 길하게 해 주어야 하나니 아, 하늘이여! 어찌 당신은 이런 것마저 분명히 하지 못하시나이까?”
춘신군은 화가 잔뜩 났지만 순자는 당시 유명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예절에 밝은 현인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순자는 다시 난릉 지방으로 돌아가 현령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초나라 임금이 죽자 정변이 일어났고, 춘신군은 복병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의 지지를 받고 있던 순자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물론 이때는 순자도 이미 반백의 늙은이가 되어 있었고, 또한 그의 마음도 두 번 다시 정치무대에 나서 동분서주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난릉에 정착하여 살다가 그 곳에 묻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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