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오월영령을 참배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년 벽두부터 정치권을 뒤흔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18일 만에 ‘사면 불가론’쪽으로 매듭지어지면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국민 통합’을 위한 의견에 경청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사면론을 꺼내든 당사자인 이 대표는 텃밭인 호남과 친문 지지층의 대거 이탈로 타격을 입었던 가운데 문 대통령의 선 긋기로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입지가 더욱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두 분의 전임 대통령이 지금 수감돼 있는 이 사실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이다. 또한 두분 모두 연세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도 있어서 아주 걱정이 많이 된다”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면론을 꺼낸 이 대표를 의식한 듯 “다만 전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많이 있고 그분들 가운데는 지금 상황에 대해 매우 아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며 “그런 국민들의 아픔까지도 다 아우르는 사면을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자는 의견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재차 “국민들의 공감대에 토대하지 않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사면권 행사, 이런 것은 지금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개인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그게 시대적인 요청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앞서 회견 시청 중 문 대통령이 사면 관련 입장을 밝히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시기상조라는 여권 주류와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익공유제에 대해선 호응하는 메시지가 나왔지만 매머드급 이슈인 사면론이 문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제동이 걸리면서 이 대표로선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게 된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또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감쌌고, 최재형 감사원장의 감사원 탈원전 위법성 감사에 대해서도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이 검찰, 감사원에 대해 줄곧 날 선 반응을 보여왔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당장 사면 정국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면서 이 대표는 반전의 모멘텀을 찾기 위해 부심할 것으로 보인다. 사면을 둘러싼 이 대표와 문 대통령의 이견이 당청간 균열로 비치지 않도록 한목소리를 낼 현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대선주자 지지율 추락세를 멈춰세우는 것도 관건이지만 쉽지 않다. 지난 15일 한국갤럽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다음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이재명 경기지사 23%, 윤석열 검찰총장 13%. 이낙연 대표 10% 순으로 조사됐다(12~14일 조사, 한국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장 이 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시청 후 곧바로 광주를 찾았지만 거센 항의 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그는 오후 광주에 도착한 뒤 서구 양동시장에서 이른바 ‘노무현 국밥집’으로 불리는 양동시장 H분식에서 모둠국밥으로 점심 식사를 한 뒤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주교를 예방했다. 사면 논란으로 흔들리는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한 취지도 깔린 것으로 보이는 호남행(行)이었다.
그러나 5·18 묘역에서 이 대표를 맞이한 것은 ‘이낙연은 이명박근혜 사면 완전 철회하라’는 광주 시민들의 항의 피켓이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의 맞불 손피켓과 항의 피켓에 둘러싸인 이 대표는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한다. 대통령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는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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