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다. 전랑은 조선시대 육조의 정5, 6품 관직으로 이·호·예·병·형·공조의 중견실무 책임자들이었다. 위로 판서, 참판, 참의가 있고, 아래로 좌랑이 있다. 특히 이조·병조의 정랑은 좌랑과 함께 인사행정을 담당하였다. 정랑과 좌랑을 합쳐 전랑銓郞이라고도 했는데, 전랑의 銓은 ‘사람가릴 전’으로 사람을 가리다, 뽑다, 선발하다, 인재를 저울질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전랑은 당상관들이 인사문제를 논의키 위해 모이는 자리에 배석하여 임용대상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도 맡았지만 이조 전랑의 경우, 언론을 담당하는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 등 청요직으로 꼽히던 이른바 삼사 관원 임명제청권을 행사하였다. 그들의 임명제청권에 문관의 인사책임자인 이조판서도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 자연스레 삼사의 언론권을 이조전랑이 주관하는 셈이 되었고, 그 때문에 이조전랑이 재상들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전랑을 거친 사람들은 출세 길도 빨랐고, 대개는 재상까지 올랐다. 젊은 낭관들에게 주어졌던 이러한 막중한 권한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붕당이 조성되었다. 당쟁으로 번진 서인 심의겸과 동인 김효원 세력 간 다툼의 시발도 이조전랑 자리 때문이었다. 김효원이 과거에 장원해 이조 전랑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가 윤원형의 문객이었다 하여 심의겸이 반대하였다. 그 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장원 급제하여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었으나, 이번엔 김효원이 외척이라 하여 반대했다.
이 일이 벌어지기 3년전 영의정 이준경이 선조에게 올린 유언에서 붕당의 출현을 경고하고 있다. 이건창(1852~1898년)의 《당의통략》은 서인 중에서 소수파던 소론 입장에서 저술됐다. 이 책에서, 이준경은 “붕당의 사론을 없애야 합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잘못한 과실이 없고 또 법에 어긋난 일이 없더라도 자기와 한마디만 서로 맞지 않으면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다잡는다거나 독서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서 고담대언으로 친구나 사귀는 자를 훌륭하게 여김으로써 마침내 허위의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군자는 함께 어울려도 의심하지 마시고 소인은 저희 무리와 함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일은 바로 전하께서 공정하게 보신 바이니 이런 폐단을 제거하는 데 힘쓰셔야 할 때입니다.”<이한우, 전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이러한 폐단 때문에, 전랑들의 심사 관원 임명제청권은 1789년(정조 13) 이후에는 완전히 폐지되었지만, 이조전랑의 망령은 21세기 우리 현실에서 되살아났다. 약 450년 전 이준경의 경고에서 우리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조전랑의 역할은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이 담당한다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이던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반대하던 윤석열검찰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민심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어 버렸다.
조국 반대를 위해서 시작된 검찰수사는 조국을 멸문지화로 몰았다. 조국의 아내는 구속되었고 그 자녀들은 고졸로 전락할 상황에 놓였다. 윤석열 법의 잣대는 조국과 자신의 수하인 윤대진의 형인 윤우진에게 공정하지 못했다. 윤우진의 비리 수사를 덮기 위해 윤 총장이 직접 변호사까지 붙여 도운 덕분에 윤대진 검사의 형은 기소를 면했다는 의혹이 있다. 윤석열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검찰과 언론이 최후의 이조전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씁쓸한 이유가 자신들의 검수완박을 막기 위해서, 쉽게 이야기 하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저질러 졌다는 것이다.
장관, 총리 등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어진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인사문제가 어렵기는 그 옛날 삼국시대에도 마찬가지 였다.
천하를 다스리고자 했던 조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조는 구현령이라는 칙령을 내걸어 능력 있는 자는 도덕성과 상관없이 등용했다. 당시 관직에 오르려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몇몇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능력 있는 인재들의 등용의 길이 막혀 있었다. 이에 조조는 구현령을 빌미로 문벌을 견제하였다. 조조는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고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좋은 인재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포용했고, 과거의 허물은 덮어주고 능력을 높이 사는 그의 인재관 덕분에 그의 수하에는 항상 인재가 들끓었다.
반면에, 제갈량은 능력뿐만 아니라 인품을 제대로 갖춘 사람을 선호했다. 특히 정직한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현자를 초대한다’라는 ‘초현대招賢臺’를 설치하고, 경험이나 지연, 혈연은 배제한 채 오로지 능력과 인품만을 보고 인재를 택했다. 그의 인재론을 보자. 첫째, 옳고 그른 것을 물음으로써 시비를 가리는 능력을 살핀다. 둘째,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어 임기응변의 능력을 살핀다. 셋째, 어떤 책략에 관한 의견을 물어서 식견을 살핀다. 넷째, 위기상황을 알려주고 그것에 맞설 용기가 있는지 살핀다. 다섯째, 술에 취하게 해서 본성을 살핀다. 여섯째, 이익을 제시해서 청렴한가 아닌가를 살핀다. 일곱째, 기한이 정해진 일을 맡겨 신용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작금에 우리는 조조의 인재관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제갈량의 인재관을 따를 것인가. 총리와 3인의 장관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난 정국은 이들문제로 시끄럽다.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할 힘은 인사권에 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요직 5,000명 정도에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심판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 인사하자요인이 발생하면 이미 늦다. 특정인사를 내정한 다음에 공고를 내서 진행하는 공개채용방식을 버려야 한다. 여야를 막론한 국민추천인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이곳에서 1차적으로 검증된 인사를 청와대로 추천해서 2차 검증을 받은 인사를 인사청문회로 내보내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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